2021년 7월 12일부터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매일 1,000명 이상씩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방역당국이 내린 극약처방이었다. 자영업자들은 7월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어 영업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강화된 방역수준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지난 14일 저녁, 일부 자영업자들은 장기간에 걸친 영업제한에 피로감을 표출하며 차량을 이용한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거리두기 4단계에 따른 영업시간제한을 해제할 것과 코로나 방역정책에 따른 영업제한으로 누적되는 손해를 보전해줄 것이 자영업자들의 주된 요구사항이다. 벼랑 끝에 놓인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코로나로 인한 국가적인 위기상황을 넘기기 위해서는 짧은 기간의 강력한 방역조치는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이와는 별개로 거리두기 4단계가 시작되기 이전, 여당에서는 재난지원금의 명복으로 모든 국민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사회 일각에서는 정부 여당의 정책실패를 무마하기 위한 포퓰리즘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국가의 재정상황을 무시한 무리한 정책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여당과는 철학과 가치를 달리하는 야당의 반발, 그리고 여론의 비판이 따르자 최근에는 소득 하위 80%의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재난지원금이 어떤 범위의 국민에게 지급될 것인지는 정치권의 협의를 통해 결정될 일이지만, 모든 국민에게 '위로금'의 명목으로 현금을 일괄지급한다는 것이 과연 타당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코로나로 인한 스트레스를 모든 국민이 힘들어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받게 된 경제적인 타격은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정도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국가/지방공무원, 대기업 또는 공공기관 등에 재직 중인 직원 등 안정된 고용이 보장되어 있는 일부 사회계층은 코로나로 인해 생활에 불편함이 발생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생계가 곤란해질 정도의 문제에 봉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기존 사회안전망 속에서 보호를 받고 있던 사람들의 경우에는 코로나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경제적 위협에 노출되었다고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반면 고용보장이 어려운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또는 코로나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기존에 경험하지 못했던 극단적인 경제적인 고통에 내몰리게 될 수밖에 없다. 즉, 코로나로 인해 형성된 경제적 취약계층은 별도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세자영업자 등 일부 계층은 단순히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넘어 생계마저도 위협받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당장의 생계도 문제이겠지만 장기간 누적된 영업손실을 극복하지 못해 파산하게 된다면 미래에 재기를 노리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사실 코로나로 인한 사회현상의 변화 또는 사회문제의 발생이 근 한두 달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미 2020년 2월 말부터 시작된 문제적 상황변화는 1년 6개월 이상의 시간을 거치며 적지 않은 사회적 문제점을 노출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이러한 국가적인 위기상황에서 신속하게 대응하고 체계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야 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정부의 적극적인 행정이란 단순히 적극적인 '현찰지급'의 형태로 나타나서는 안된다. 재난지원금이 이미 수 차례 지급된 상황에서 그 정책의 효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에 대한 연구와 검토가 이미 이루어졌어야 했고, 이번 재난지원금의 지급은 이러한 연구와 검토를 바탕으로 보다 필요하고도 적절하게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지원을 정말 필요로 하는 계층은 어떤 계층인지, 각각의 경우에 어떤 종류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지를 정밀하게 검토해서 효과적이고 확실한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정부와 여당에게는 이런 종류의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시행하려는 정책에서는 이런 노력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정부와 여당의 정책이 선동적이고 포퓰리즘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는 것이고, 현 정권에 대해서 무능한 정권이라고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와 여당만을 무능하다고 나무랄 것은 아니다.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야당에게서도 어떤 형태의 '대안'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야당이 선별적/선택적 지원을 주장하겠지만, 어떤 계층을 선별해서 지원을 해야 하는지 또는 어떤 종류의, 그리고 어느 정도의 지원을 해야하는 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이 없다. 

 

그 놈이 그 놈이다.

'정의론'을 상징하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팬데믹에서 가장 고민한 부분은 무엇일까. 샌델 교수는 매일경제와 신년 특별 인터뷰를 하면서 "팬데믹은 이전부터 존재해온 불평등을 더욱 드러냈고, 이런 불평등에 대처하는 방법을 놓고 큰 논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위기 전 깊이 인식하지 못했지만 심각한 문제였던 부의 격차에 따른 학력 격차를 비롯해 양극화의 골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8년 만에 신간 '공정하다는 착각'을 낸 샌델 교수는 "공동체에 대한 의식, 겸손을 상실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능력에 따른 차별로 대표되는 능력주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필요하고 당연한 가치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샌델 교수는 이런 당연한 명제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 학력주의에 대한 맹신이 또 다른 불공정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인터뷰는 줌을 이용해 영상으로 이뤄졌다.

―팬데믹으로 빈부의 격차가 학습력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우려가 있다.

▷팬데믹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불평등을 더 심화시켰다. 이런 불평등은 사실 팬데믹 이전부터 존재해 왔는데, 팬데믹으로 더 부각된 것이다. 부유한 가정에서는 과외를 시킬 수 있다. 그렇지 못한 가정은 고통을 받는다. 이런 점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 이슈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놓고 새로운 논쟁을 일으킬 것이다.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학력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많은데, 정의의 관점에서 개선책은.

▷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SAT)은 당초 도입 취지가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대학 진학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SAT는 1926년 미군 IQ 테스트로 시작됐다). SAT가 도입되기 전에 하버드대 같은 곳은 사립학교 출신, 특별한 배경이 있는 학생이 많이 입학했다. SAT는 등록금이 비싼 사립학교 등을 나오지 못했지만 우수한 지적 능력을 가진 학생을 시험으로 선발하려는 취지로 도입됐다. 최근에는 가계소득과 SAT 간에 밀접한 관계가 나타나고 있다(샌델 교수는 한국판 SAT에 해당하는 '수능'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가계소득과 수능 성적 간에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알고 있다. 부유한 학생은 어린 시절부터 더 많은 기회, 이점이 있다. 나는 고교 생활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가계소득과 고교 성적 간 관련성은 가계소득과 SAT 성적 간 관련성보다 약하다.

―한국에서는 논란 끝에 수시보다 정시 비중을 높였는데.

▷한국에는 수능 비중이 꽤 높다고 알고 있다. 대학 입학 평가에는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정량적 평가가 정성적 평가보다 객관적이긴 하다. 하지만 통계, 숫자에 의존하는 정량적 평가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객관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오도할 수 있다.

미국 대학 입시에서 논란이 많은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 그렇다.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에서 능력주의를 비판했는데.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능력이 있다는 것 자체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불평등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출발선상에 있지 않다. 모든 사람이 성공할 기회가 같지 않다. 이것이 문제다. 때로는 선천적 능력이 이를 좌우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인 우사인 볼트는 금메달을 땄지만, 그의 트레이닝 파트너는 더한 노력을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덕목이 중요한가.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겸손(humility)이 있어야 한다. 능력주의의 문제는 성공을 장려하면서 성공이 온전히 개인의 노력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행운이 도운 점을 무시한다.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 경쟁의 결과는 운이나 선천적 능력에 더 좌우될 수 있다. 사람마다 운동선수, 학자, 과학자, 기업가 등 다양한 능력이 있다.

겸손을 상실한 것이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하는 대가로 다가왔다.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으로 상징되는 나라다. 그런데 미국에서 계층 간 이동 사다리가 무너졌고, 중국이 오히려 이런 기회가 더 많다고 분석했던데.

▷1인당 국내총생산(GDP) 면에서 중국은 여전히 미국에 상대가 안 된다. 하지만 세대 간 계층 이동 면에서 중국은 미국에 비해 더 많은 기회가 있다. '아메리칸 드림'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미국인은 불평등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왔다. 계층 간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믿어왔다. 불평등이 심화하더라도 별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도 노력하면 최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이 멈췄다.

연구 결과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하층에서 태어난 사람이 최상층에 도달할 확률은 4~7%에 불과하다.

―미국 중산층 이하 계층의 실망감이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성공의 요소라고 물어보면 미국인은 대부분 그렇다고 답하는데, 유럽인은 절반 가까이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미국인은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계층 간 이동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유럽인은 회의적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에서 사회적 계층 이동이 더 힘들다. 덴마크, 독일, 캐나다는 미국보다 훨씬 더 개천에서 용이 날 가능성이 높다. 아메리칸 드림을 개념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이렇게 차이가 있다.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이 정의를 훼손했다고 보나.

▷민주당은 대학교육을 강조하면서 전통적 지지층이었던 노동자 계층을 모욕했다. 근로자가 노동의 존엄성이 더 이상 존중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미국인 대부분은 대학 졸업장이 없다. 대학 졸업장이 없는 전기 기술자, 트럭 기사와 같은 사람이 실망하게 된 것이다. 노동자는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고 분노했다.

2016년 대선 당시 대학 졸업장이 없는 백인 중 3분의 2가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찍었다.

―한국에 대한 조언이 있다면.

▷한국이 팬데믹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한국이 보여준 강한 연대(solidarity) 의식이다. 소상공인이 임차료를 내지 못할 때 건물주가 이를 유예해주고 경감해 줬다고 들었다. 미국이 배워야 할 점이다. 한국인을 존중하며, 미국이 배워야 한다고 본다. 특히 한국인의 강한 공동체 의식, 연대 의식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헬스케어 인프라에 대한 논란이 증폭됐는데 정의라는 관점에서 헬스케어 개혁 방안은.

▷정의의 관점에서, 정의로운 사회라면 모든 사람들이 경제력과 관계없이 의료서비스 접근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오랫동안 큰 논란이 된 사안이다. 여전히 미국에서는 전국적인 건강보험체계가 없다. 정의의 문제다.

도덕적으로나, 경제적 관점에서나 이런 접근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미국이 코로나19 사태에 형편없이 대응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접근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

미국의 실패는 형편없는 정부, 형편없는 리더십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코로나19 검사조차 장시간 기다리지 않고서는 받기가 힘든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각국이 코로나19 상황에서 재난지원금을 대규모로 풀었다. 한국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위기 시에는 필요하다고 보는데, 장기적으로 기본소득 필요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 문제를 정의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봐야 할까.

▷어려운 이슈다. 위기 중 지원금은 사람들의 생존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필요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 문제는 양면성이 존재하는(ambivalent) 이슈다. 누구든 뒤처지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좋은 정책일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런 대규모 재원을 조달할 수 있을지다.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서 공공보건, 공공교육, 실업보험기금 등 핵심적인 공공서비스를 축소해야 한다면 이는 후퇴하는 정책이다. 노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노동의 종말을 야기하는 기본소득은 바람직하지 않다.

―팬데믹 이후에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일은 단지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삶에서 목적의식을 갖고 자존감을 위해 일을 한다. 이렇게 해서 경제와 공공선에 기여하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가정, 공동체, 국가에서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이다. 노동을 존엄하게 여기는 것은 이런 욕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기본소득은 이런 점을 대체할 수 없다.

▶▶He is …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67)는 같은 대학 교수였던 존 롤스가 1970년대 정립한 '정의론'에 도전장을 내며 '정의'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한 세계적 석학이다.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 교수가 됐다.

도전장을 내민 것은 그가 교수가 된 지 2년 뒤인 29세 때다. 샌델 교수는 정의를 추구함에 있어서 자유주의의 한계를 끊임없이 비판해왔다. 하버드대에서 정의라는 과목을 20년 넘게 강의했으며 이 강좌는 하버드대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학생이 들은 수업으로 꼽힌다. 특히 2009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출간하며 전 세계적으로 '정의'에 대한 붐을 일으켰다.

[뉴욕 = 박용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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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2020.12.08)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2.5가 발동되었다. 이미 지난 추석 전후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2주간 시행되었지만, 최근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는 관계로(2020.12.06. 당일 확진자 615명) 유사한 조치가 다시 한번 시행된 것이다. 정부의 지침에 따라 수도권 내의 모든 학원과 교습소는 앞으로 3주간 모두 운영을 중단해야 하고, 원격수업만이 허용됐다.

 

이러한 정부의 발표를 접한 학부모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2월 말까지 중고등학생들의 기말고사 일정이 잡혀 있는 상황에서 모든 학원의 운영이 중단되기 때문에, 사교육의 도움이 절실한 학생과 학부모들은 급하게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의 입시와 관련한 학원 및 교습소는 제한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도록 허용하고 있어 다행이지만, 그 이하 학년의 학습에는 적지 않은 격차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학원과 교습소의 원장들은 당혹감을 넘어서 혼란에 빠진 듯한 모습이다.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수입은 줄어드는 반면 고정비로 여겨지는 인건비와 임대료는 그대로 지출을 해야 한다. 인건비 지급이 어려운 원장들은 부득이 강사를 해고할 수밖에 없고, 임대료 지출마저도 어려운 원장들은 학원을 폐업해야 하는 실정이다. 특히 원격수업이 불가능한 예체능 과목 학원들은 운영상의 곤란이 심각해 보인다. 이런 경우는 재난지원금의 보조 외에는 학원 운영상의 적자를 보전할 방법을 찾기 어렵다. 이번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학원 및 교습소의 운영자 등 다수의 영세 자영업자에게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명백하다. 반면 국가적인 재난의 상황임에도 사업장의 임대인 또는 사업자에 대출을 시행하고 이자를 징수하는 은행에 대해서는 사회적 위험의 어떠한 분담이 요구되지 않고 있다.

 

2020.12.09. 하루 신규 확진자가 682명에 달하고, 그 전파과정을 알 수 없는 감염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거리두기 정책은 필요했다. 그러나 학원가에서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은 정책의 부당성에 기인하기보다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방침에 대한 불만으로 보인다. 학생들의 불규칙하고 빈번한 접촉을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학원의 운영은 전면 금지되었지만 PC방 등 일부 다중이용시설은 영업이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다. 그러나 그 허용과 금지의 기준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학원에서 벗어난 학생들이 방역수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 PC방 등 다른 장소에 몰리는 현상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학원의 영업금지에 대한 명목이 무색해졌고 학원가는 이번 정책이 '정권 차원의 사교육 죽이기'라며 불만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거리두기의 단계를 지나치게 높게 설정하면 일상생활이 가능하지 않게 됨으로써 경제적인 타격이 심각해 질 것이고, 거리두기를 더 이상 미루었다가는 방역체계 및 의료체계가 붕괴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도 사회적 거리두기의 단계에 대해서 나름대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민감한 정책을 시행하면서 그 효과가 의도 내지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 그리고 특정 계층에 무리한 부담을 전가하는 경우에는 정책에 대한 신뢰를 넘어 정부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이근 예비역 대위에 대한 폭로가 쏟아지고 있다. 과거 지인에게 200만원을 빌리고 이를 되갚지 않았다는 소위 ‘빚투’ 사건에 이어, 성추행 관련 사건에 휘말려서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폭로, 그리고 폭행전과가 있어 ‘전과 2범’이라는 언론의 기사가 나오기까지 했다.

해군 UDT에서 군복무를 했던 이근 대위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유튜브 프로그램 ‘가짜사나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스타덤에 오른 인물이다.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최근 다수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사회적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과거에 대한 다수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의 유명세로 인해 출연했던 TV프로그램이나 광고에서도 그 후속조치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근 대위에 대한 폭로와 그 파장은 사회적 공인에 대한 최소한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대중이 보여주는 관심과 인기에 힘입어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부를 얻게 되는 공인에게 그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또 그 공인이 저질렀던 부적절했던 과오에 대해 진지하게 자성할 것을 바라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인 것이다.

공인에게 아직 해결되지 않은 또는 아직 책임지지 않은 과거의 문제에 대해 해결을 요구하는 것 또는 자숙을 요구하는 사회적 요구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지탄을 받는 행위 또는 심지어 범죄 등에도 불구하고 자숙 없이 유명세를 얻는 경우 성장하는 청소년들의 가치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뿐더러 공동체의 도덕적 해이에도 원인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공인의 다수가 법에 위반된 행위를 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상황에서 대중이 그를 외면하거나 법적으로 제재를 받고 있는 경우는 지금 현재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병역을 기피하고 미국국적을 취득한 Steve Yoo의 경우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땅을 밟지 못하고 있고, 인기 연예인이던 신정환씨는 도박사건에 연루된 이후 방송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밴드 잔나비의 멤버 유영현은 청소년 시절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지목된 이후 그룹에서 탈퇴하고 연예인 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성범죄를 저질렀던 가수 정준영씨는 최근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의 판결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공인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고 해서 소위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강남스타일’로 세계적 인기를 누렸던 싸이는 과거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2회차에 걸쳐 군복무를 하기도 했고, 대마초 흡연의 문제로 형사입건이 되었던 경험이 있다. 개그맨 ‘신동엽’도 대마초 흡연 혐의로 형사입건되었던 전력이 있다. 유명 연예인 ‘김구라’는 거친 언행과 혐오발언을 주요 컨셉(?)으로 사회적 인지도를 얻으며 연예계에 데뷔를 했지만,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과거의 지나친 발언에 대해서 적지 않은 사과를 했어야 했고,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일정 기간 모든 공적 활동을 중단하고 자숙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들의 경우는 범죄에 대해 법적인 처벌을 받거나 사회적인 물의에 대해서는 응분의 책임을 다 하거나 충분한 자숙의 시간을 갖고 대중들의 용서를 받은 사례라고 이해된다.

위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사건에서와 같이 대중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공인이라고 하더라도 완벽한 인간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들 역시 욕구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고, 그로인해 생각지도 못한 사회적 물의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점인 것 같다. 하물며 사회적 유명세를 얻기 이전에 평범한 개인으로서 살아가던 사람에게 사회적 과오를 찾아내는 것은 사실 어렵지는 않아 보인다.

어쨌든 이근 대위는 지금 과거의 추문으로 인해 적지 않은 곤란을 겪고 있다. 최근 유명세를 얻은 한 개인과 그의 과거를 폭로한 기자의 갈등은 법적 다툼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의 법적 공방을 지켜봐야 하는 씁쓸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최근 유명세를 얻은 개인의 전과를 굳이 들춰내어 폭로한 당사자들의 의도에 대해 아쉬운 생각이 든다. 어떤 목적의식으로 그의 과오를 들춰내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들이 찾아낸 바와 같이 사회적 물의와 법적 전과로 얼룩진 누군가가 유명세를 얻거나 ‘정의의 사도’로서 비춰지는 것이 못마땅했을까? 미국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음에도 한국국적을 선택하고 모두가 기피하는 군복무를, 그것도 가장 어렵다는 특수부대에서 수행했다는 점에 사회적 이목이 쏠리는 것이 불편했을까?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점을 밝히자면 이들에게 건설적인 목표의식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갑작스러운 스타덤과 함께 찾아온 또 다른 갑작스러운 사회적 비판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이근 대위에게 안타까움이 든다. 이근 대위는 법원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았고 법적 책임의 소재와 범위가 정해져 있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억울한 점이 있다고 밝히기는 했지만, 그 억울함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판단과 그 내용에 대해서는 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같이 살아가던 공동체를 버리고 개인적인 편익을 쫓아 해외로 도주(!)한 누군가(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쥐새끼’라고 부른다)를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이근 대위는 반대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도 기피하는 불편함을 스스로 감수했던 인물이다. 만약에 그에게 과오가 있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함께 부대끼고 살아가고 있는 한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인정할 수 있는, 그리고 새로운 방향에서 우리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의 인기는 대중이 만들어낸 것이니 그의 전과(前過)에 대한 판단도 대중에게 맡겨 두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이근 대위와 관련한 사회적 논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근 대위는 적지 않은 TV 프로그램 또는 광고촬영에서 손실을 입을 것이 추정되고, 추문을 폭로한 기자 또는 단체들과 법적 다툼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갈등이 극적으로 또는 빠르게 마무리되지 않는다면 ‘가짜사나이’라는 유튜브 영상으로 얻은 스타덤을 계속 유지해 나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추석 연휴에 '공영방송' KBS가 의미있는 기획을 했다. 15년 만에 텔레비젼에 나온 가수 나훈아의 특별공연을 진행했던 것이다.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국민을 위한 위로공연이라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출연료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2008년 여배우들과의 염문설에 대한 기자회견을 통해 범부(凡夫)가 아님을 보여줬던 그였는데, 수 억이나 하는 개런티를 받지 않았다는 소식은 그를 더욱 더 대범한 사람으로 만들어 줬다. 많은 언론들은 이런 소식을 전하며 대중과 국민을 위한 그의 진정성을 부각시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쯤에서 마무리가 되면 좋을 일이건만, 언론과 정치권은 한 걸음을 더 들어가는 모양새다. 공연 중간마다 이어지는 그의 발언을 통해 각자 나름대로의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야권이나 보수 언론에서는 나훈아가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실정에 대해 소신발언을 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것이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속이 후련한 발언일 수도 있고, 정부나 여당에 대해서는 불편할 수도 있는 발언이다.

 
국민적인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그의 발언이 소소한 파장을 가지고 오는 상황에서 문득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다. 지난 보수 정권에서 정부와 여당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수 년 동안 방송에서 사라져버렸던 몇몇 연예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자기 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힘 없는 연예인들은 정치적으로 핍박을 받고 생계마저 위협을 받았다. 그런 파렴치하고 치졸한 행동들이란 지금 야당으로 내몰린 당시 보수정부가 자행했던 일이다.

 

그들은 나훈아의 발언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언어인 양 행세하기 이전에 누군가에게 먼저 사과를 해야 하는 것 아닌지...

 

현 정부가 내놓고 있는 국가적 현안에 대한 정책의 방향에 대해서 많은 부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권이 지난 보수정권보다 더 민주적이라고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KBS라는 매체를 통해 나훈아가 정부와 여당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정치권과 수많은 언론이 그의 목소리를 빌어서 정부와 여당을 비판할 수 있다는 현실에 안도하고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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