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론'을 상징하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팬데믹에서 가장 고민한 부분은 무엇일까. 샌델 교수는 매일경제와 신년 특별 인터뷰를 하면서 "팬데믹은 이전부터 존재해온 불평등을 더욱 드러냈고, 이런 불평등에 대처하는 방법을 놓고 큰 논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위기 전 깊이 인식하지 못했지만 심각한 문제였던 부의 격차에 따른 학력 격차를 비롯해 양극화의 골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8년 만에 신간 '공정하다는 착각'을 낸 샌델 교수는 "공동체에 대한 의식, 겸손을 상실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능력에 따른 차별로 대표되는 능력주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필요하고 당연한 가치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샌델 교수는 이런 당연한 명제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 학력주의에 대한 맹신이 또 다른 불공정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인터뷰는 줌을 이용해 영상으로 이뤄졌다.

―팬데믹으로 빈부의 격차가 학습력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우려가 있다.

▷팬데믹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불평등을 더 심화시켰다. 이런 불평등은 사실 팬데믹 이전부터 존재해 왔는데, 팬데믹으로 더 부각된 것이다. 부유한 가정에서는 과외를 시킬 수 있다. 그렇지 못한 가정은 고통을 받는다. 이런 점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 이슈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놓고 새로운 논쟁을 일으킬 것이다.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학력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많은데, 정의의 관점에서 개선책은.

▷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SAT)은 당초 도입 취지가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대학 진학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SAT는 1926년 미군 IQ 테스트로 시작됐다). SAT가 도입되기 전에 하버드대 같은 곳은 사립학교 출신, 특별한 배경이 있는 학생이 많이 입학했다. SAT는 등록금이 비싼 사립학교 등을 나오지 못했지만 우수한 지적 능력을 가진 학생을 시험으로 선발하려는 취지로 도입됐다. 최근에는 가계소득과 SAT 간에 밀접한 관계가 나타나고 있다(샌델 교수는 한국판 SAT에 해당하는 '수능'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가계소득과 수능 성적 간에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알고 있다. 부유한 학생은 어린 시절부터 더 많은 기회, 이점이 있다. 나는 고교 생활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가계소득과 고교 성적 간 관련성은 가계소득과 SAT 성적 간 관련성보다 약하다.

―한국에서는 논란 끝에 수시보다 정시 비중을 높였는데.

▷한국에는 수능 비중이 꽤 높다고 알고 있다. 대학 입학 평가에는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정량적 평가가 정성적 평가보다 객관적이긴 하다. 하지만 통계, 숫자에 의존하는 정량적 평가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객관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오도할 수 있다.

미국 대학 입시에서 논란이 많은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 그렇다.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에서 능력주의를 비판했는데.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능력이 있다는 것 자체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불평등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출발선상에 있지 않다. 모든 사람이 성공할 기회가 같지 않다. 이것이 문제다. 때로는 선천적 능력이 이를 좌우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인 우사인 볼트는 금메달을 땄지만, 그의 트레이닝 파트너는 더한 노력을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덕목이 중요한가.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겸손(humility)이 있어야 한다. 능력주의의 문제는 성공을 장려하면서 성공이 온전히 개인의 노력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행운이 도운 점을 무시한다.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 경쟁의 결과는 운이나 선천적 능력에 더 좌우될 수 있다. 사람마다 운동선수, 학자, 과학자, 기업가 등 다양한 능력이 있다.

겸손을 상실한 것이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하는 대가로 다가왔다.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으로 상징되는 나라다. 그런데 미국에서 계층 간 이동 사다리가 무너졌고, 중국이 오히려 이런 기회가 더 많다고 분석했던데.

▷1인당 국내총생산(GDP) 면에서 중국은 여전히 미국에 상대가 안 된다. 하지만 세대 간 계층 이동 면에서 중국은 미국에 비해 더 많은 기회가 있다. '아메리칸 드림'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미국인은 불평등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왔다. 계층 간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믿어왔다. 불평등이 심화하더라도 별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도 노력하면 최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이 멈췄다.

연구 결과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하층에서 태어난 사람이 최상층에 도달할 확률은 4~7%에 불과하다.

―미국 중산층 이하 계층의 실망감이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성공의 요소라고 물어보면 미국인은 대부분 그렇다고 답하는데, 유럽인은 절반 가까이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미국인은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계층 간 이동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유럽인은 회의적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에서 사회적 계층 이동이 더 힘들다. 덴마크, 독일, 캐나다는 미국보다 훨씬 더 개천에서 용이 날 가능성이 높다. 아메리칸 드림을 개념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이렇게 차이가 있다.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이 정의를 훼손했다고 보나.

▷민주당은 대학교육을 강조하면서 전통적 지지층이었던 노동자 계층을 모욕했다. 근로자가 노동의 존엄성이 더 이상 존중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미국인 대부분은 대학 졸업장이 없다. 대학 졸업장이 없는 전기 기술자, 트럭 기사와 같은 사람이 실망하게 된 것이다. 노동자는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고 분노했다.

2016년 대선 당시 대학 졸업장이 없는 백인 중 3분의 2가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찍었다.

―한국에 대한 조언이 있다면.

▷한국이 팬데믹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한국이 보여준 강한 연대(solidarity) 의식이다. 소상공인이 임차료를 내지 못할 때 건물주가 이를 유예해주고 경감해 줬다고 들었다. 미국이 배워야 할 점이다. 한국인을 존중하며, 미국이 배워야 한다고 본다. 특히 한국인의 강한 공동체 의식, 연대 의식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헬스케어 인프라에 대한 논란이 증폭됐는데 정의라는 관점에서 헬스케어 개혁 방안은.

▷정의의 관점에서, 정의로운 사회라면 모든 사람들이 경제력과 관계없이 의료서비스 접근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오랫동안 큰 논란이 된 사안이다. 여전히 미국에서는 전국적인 건강보험체계가 없다. 정의의 문제다.

도덕적으로나, 경제적 관점에서나 이런 접근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미국이 코로나19 사태에 형편없이 대응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접근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

미국의 실패는 형편없는 정부, 형편없는 리더십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코로나19 검사조차 장시간 기다리지 않고서는 받기가 힘든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각국이 코로나19 상황에서 재난지원금을 대규모로 풀었다. 한국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위기 시에는 필요하다고 보는데, 장기적으로 기본소득 필요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 문제를 정의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봐야 할까.

▷어려운 이슈다. 위기 중 지원금은 사람들의 생존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필요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 문제는 양면성이 존재하는(ambivalent) 이슈다. 누구든 뒤처지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좋은 정책일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런 대규모 재원을 조달할 수 있을지다.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서 공공보건, 공공교육, 실업보험기금 등 핵심적인 공공서비스를 축소해야 한다면 이는 후퇴하는 정책이다. 노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노동의 종말을 야기하는 기본소득은 바람직하지 않다.

―팬데믹 이후에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일은 단지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삶에서 목적의식을 갖고 자존감을 위해 일을 한다. 이렇게 해서 경제와 공공선에 기여하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가정, 공동체, 국가에서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이다. 노동을 존엄하게 여기는 것은 이런 욕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기본소득은 이런 점을 대체할 수 없다.

▶▶He is …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67)는 같은 대학 교수였던 존 롤스가 1970년대 정립한 '정의론'에 도전장을 내며 '정의'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한 세계적 석학이다.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 교수가 됐다.

도전장을 내민 것은 그가 교수가 된 지 2년 뒤인 29세 때다. 샌델 교수는 정의를 추구함에 있어서 자유주의의 한계를 끊임없이 비판해왔다. 하버드대에서 정의라는 과목을 20년 넘게 강의했으며 이 강좌는 하버드대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학생이 들은 수업으로 꼽힌다. 특히 2009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출간하며 전 세계적으로 '정의'에 대한 붐을 일으켰다.

[뉴욕 = 박용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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